어른이 되는 과정

어른이 되는 과정

 

 

Scene #1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니는 회사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야근했다. 새벽에는 광화문에서 집까지 택시로 삼십 분이면 올 수가 있다. 나를 마지막 손님으로 이제 곧 퇴근하신다는 택시 기사님께서는 당신 일을 많이 자랑스러워하셨다. 기운이 하나도, 정신이 정말 하나도 없었지만, 열심히 존경을 표했다. 우리 집을 한참 지난 곳을 정확한 목적지라고 자신 있게 내려주셨을 때, 그저 감사하다는 말만으로 인사하면서 그랬다. 새벽 어스름을 걷는 퇴근이 피곤하고 신기했다. 그래 내가 드디어 밥값을 하고 있는 거야. 엄마가 기뻐하실 것 같다고 생각했다.

    꿈을 포기했다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았다. 미안해...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누구에게 무엇이 미안한지도 모르겠는데도, 왠지 정말로 미안해.

 

 



Scene #2

 

    동생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귄 여자와, 처음으로 끝냈던 그 날 밤. 그놈을 위로해주려고 틀었던 영화는 엉엉 우는 그놈 때문에 멈추었다. 손을 붙잡고 등을 토닥여주며 무슨 말이든 전부 들어주었다.
   헤어지는 이 순간까지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걔가 억울하고 섭섭해.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데... 근데 누나, 점점 변하는 그 애를 지켜볼 자신이 없어. 그런데 너무 힘들다.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나는 안 울 줄 알았는데, 정말 너무너무 아프다. 내가 왜 이러지 왜 그랬지? 왜 헤어져야 하지? 내가 잘못 사랑했나 봐. 내가 그랬나 봐.

 


    '진정한 고귀함은 과거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는 것'
    멈춘 화면 속의 대사가 참으로 드라마틱하던 그 시간에, 이런 게 드라마틱하니 글로 써두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또다시. 대단히 가까운 동생에 대하여 여전히 너무도 타자이며, 결국에는 완전히 그에 공감할 수 없는 개별의 존재라는 게. 드라마틱했다.

    애가 너무너무 엉엉 울어서, 가끔은 나도 눈물이 났다. 틈틈이 이 어린 놈의 몸부림이 문득 웃기기도 했지만, 열심히 숨겼다. 2년 전 나도 많이 울었었다. 똑같은 이유로 힘들었기 때문에 잘 안다, 그, 외로움과 비참함. 그러나 시간의 길이도 사랑의 크기도 인내의 깊이도 나의 지난 연애와는 비할 바가 못 되는 동생의 그것이라, 그게 또. 걱정이었다. 그 시절 나는 아픔에 적응하고 아픔을 이해하고 아픔을 인정하기 위해 시를 많이 읽었다. 얘도 나름의 선한 방법과. 또 감사한 순간들로... 잘 이겨냈으면. 어른이 되는 과정일 뿐이야, 라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으로 계속 기도를... 하고 있다. 불쌍한 새끼. 불쌍한 새끼... 동생이라고, 누나랑 똑같은 카테고리의 실연을 하고 있다. 우리 중 누가 다시 실연 한다면 또 같은 모습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Scene # 3 

 

 

    언니는 아이 셋을 데리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열흘이 넘는 해외 선교에서 어제 돌아온 시부모님은 많이 피곤하셨고, 아이가 셋이나 있는 집은 쉴 곳은 못 되니까. 나는 그런 언니를 위해 집에 가지 않았다. 키즈카페에서, 식당에서 거의 여섯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한 주간의 낯선 회사 생활로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지만, 언니는 늘 그보다 더 힘들게 사니까, 내가 외면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애들이 좋아서. 보고 싶어서 함께했다. 얼굴을 많이 보고 또 손을 자주 잡고 꽤 안아줄 수 있었다. 고맙게도..

    나는 점심을 사오기도 하고, 셋 중 하나를 랜덤하게 맡아서 돌보고, 아이들이 흘리는 음식을 닦고 우리가 있는 자리를 계속 정리했다. 때때로 울먹거리거나 분을 내는 아이를 달래려고 노력했다. 뭐만 하면 이모, 이모 부르는 것도 좋고. 다치지 말라고 심심하지 말라고 다치지 말라고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도 다 좋았다. 종종 하나님이 나랑 어떻게 동행하시는지 생각했던 거 같다. 감사했다. 언니가 무엇에라도 벅차하면 그때 나는 잡스러운 일이라도 해줄 수 있어서 좋았고, 바로 그걸 하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언니는 늘 이것보다 힘들다. 하지만 절대 불평하지도 않고 늘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그게 언니다.

 

 

    육아가 뭔지 아예 모르지도, 아예 잘 알지도 않기 때문에 또다시, 내가 과연 아이를 낳아도 되는 사람일까 자신이 없어졌다. 언니만큼 잘 할 자신이 없다. 일하면서 아이에게 충분할 수 없다. 시간이 많더라도, 체력이 없고 애초에 냉정한 사람이기도 하다. 아이가 너무 외로워할지도 몰라. 세상이 이렇게 고된데, 어떤 일을 지날지 모르는 운명인데, 아무리 애를 써도 모든 슬픔으로부터 아이를 지킬 수는 없을 거야. 어쩌면 내가 또다른 재앙이 되버릴 지도 몰라. 낳지 않는 게 최선의 사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난자도 정자도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저는 그래도 태어나고 싶어요. 그런 친구들이, 저는 그래도 낳고 사랑하고 싶어요. 가족이 되고 싶어요. 하는 엄마 아빠를 만나 태어나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내 의지로 누구도 낳지 않는다면, 역시 내 의지로 누군가의... 혹시 모를 모든 행복을 빼앗는 일이 되리라. 그래 그건 아니지.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몰라. 그럼 만약 내가, 나 같은 것도 나의 아이를 만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면. 그때는 아이를 위해 반드시, 일을 포기해야겠다. 경력 단절을 미리 준비하자. 이게 내 선택이다. 그런 결정을, 언니의 삶에 참여하며. 하고 말았다. 내가. 내가.





 

Epilogue of today

 


    근데 나 왜 울지... 정말로 정말로 오빠들이 보고 싶다. 잘 지내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대로 어떻게 행복한지 재잘재잘 수다를 듣고 또 웃는 얼굴을 무작정 바라보고 싶고. 아직 마음이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은... 나도 울고 있으니까. 그냥 같이 울고 싶다. 기쁠 때만큼 슬플 때도 우리가 함께하면 좋을 텐데. 잘 있어 진아? 보고 싶어 진아. 보고 싶다 진아. 노래에 조금은 잘못이 있는 것도 같다. 내 입술 따듯한 커피처럼. 내가 이별한 것도 아닌데, 내가 애 키우면서 삶을 다 바꾼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울지. 버스에서부터 집 앞까지 왜 이렇게 훌쩍대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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