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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4.17 봄에 떨어진 꽃을 위해

봄에 떨어진 꽃을 위해









수챗구멍을 막고 있는 머리카락을 끌어내자

더럽게 고인 물에 우리는 잠겨있다 

표면에 얽인 것은 겨우 한 두 가닥이래도

그 아래 가발 수 천 개 만큼의 인모(人毛)가 얽혀있지 않다면 

더럽게 고인 이 물이 

우리를 일 년 내내 익사하게 만든 이 물이 

여직 내려가지 않을 없다


잠긴 배를 꺼내 달라. 검은 머리채를 끌어내라.


봄에 떨어진 꽃을 위해. 봄에 진 꽃을 위해. 




   1년이다. 할 수 있는 일은 어설피 시작(詩作)하는 것, 슬퍼하는 사람들의 눈물의 메아리로 적게라도 내 눈물을 삼켜보는 것,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위정자들을 비난하는 것, 그런 것들이다. 오늘 내가 한 일은 이게 전부다. 여태 한 것도 이게 전부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겨우 이거다. 민족의 옛 영웅들을 생각해본다. 우리는 세종대왕도 있었고 이순신도 있었다. 안중근도 있었고 유관순도 있었다. 아아 검은 날에도 빛나는 사람이 분명히 있어왔다. 왜 지금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아니면 정말로 아무도 없는 건지. 이 멍청한 수뇌부가 전부 자격을 박탈당하면 그 자리에 올라서서 착한 일을 이루어줄 능력 있는 사람은 과연 있는지. 드라마를 생각해본다. 힐러의 정후처럼 문호처럼, 그런 영웅은 정말 현실에는 없는 건지. 나는 할 수 없는데. 나는 이렇게 작은데.. 과방 앞에 있는 노란 리본을 얻어 달고 다니는 것밖에, 나는. 대자보도 쓸 수 없고. 광화문도 갈 수 없고. 나는 이렇게 바보 같은데. 부끄러운데.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무력하게 슬퍼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그 압도적인 영정사진 앞에서 결심했는데, 여태까지 뭘 했는지 모르겠다고 앞으로마저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지. 그럴 수는 없다. 기억한다, 2014년의 4월 16일. 그리고 언론의 과오들. 국가의 유기들. 하루아침에 뚝 떨어진 대한민국이 아니다. 그러니까 하루아침에 고쳐지는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책임져야지 어쩌랴! 이곳이 우리가 만들어온 나라인데. 오늘도 우리는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죽을 때 까지 책임져야 하는 내 나라를. 외면하지 말고 조금씩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봄에 떨어진 꽃을 위해. 봄에 진 꽃을 위해.




  부실 선박이 불법 운항을 지속할 수 있도록 만든 허술한 규제를 개정해야 한다. 허술한 규제를 더욱 무력하게 만든 사람 간의 비리를 밝히고 처벌해야 한다. 사고 당시 어수선했던 기관 간 보고체계를 개혁해야 한다. 구조를 방해하던 위계와 인습을 끊어내야 한다. 다이빙벨은 충분히 의미 있을 수 있는 작업이었다. 지시를 내리고 받고 카드 A, 카드 B를 계산하는 것 따위를 집어치워야 한다. 그게 '지배적 분위기' 여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의 목적을 바꾸는 원칙이 필요하다. 암묵적 약속을 바꾸어야 한다. 규제 해제와 성장보다 안전으로. 소수의 고속성장이 다수를 이끌어줄 것이라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모두가 국민이다. 그 오랜 급속 성장의 그늘에 이제 빛을 비추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빛으로.




   나로하여금 쓰고, 울고, 더욱 고민하게 만든 글을 마지막으로 옮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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