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side/Hard'에 해당되는 글 1건
- 2015.04.19 그 출국이 갖는 의미
그 출국이 갖는 의미
그 출국이 갖는 의미
단순한 해외 순방이라고 생각해보고 싶어도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1-1 세월호 1주기를 맞이해 이번 주에만 크게 두 차례의 집회가 있었고 진압이 있었다. 16일의 헌화행렬은 경찰이 쳐둔 차 벽에 막혀 도로로 몰렸고, 해산 명령을 받았지만, 말 그대로 사방이 막혀있었기 때문에 도리어 해산하지 못했다. 18일 오늘은 띠 잇기 행사가 있었고, 통제 범위를 벗어난 시민들을 시각 안에서 감시하기 위해 차 벽이 세워지고 해산을 명령받았다. 물대포와 캡사이신, 욕설과 폭력이 함께하는 대치가 발생했다.
1-2 피차로 분위기가 격앙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경찰의 선제적 과잉진압이 모인 사람들을 분노하게 하였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또한, 많은 무리를 이용하려는 '다른 의도'를 가진 자들이 숨어들어 대치의 폭력성을 극대화 시켰다. 세월호를 위해 모인 사람들 뒤에 숨어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의 극단적 폭력은, 자극적인 '건수'로서, 집회를 위해 모인 모두의 행실로 치환된다.
2-1 오직 두 개의 키워드가 남는다. 경찰의 폭력적 진압과 시위대의 폭력적 저항이다. 미디어는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생생하고도 자극적으로 이 둘의 대치를 전달하고,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보태고, 자리에 없던 사람은 더욱 많은 말들을 보탠다.
2-2 대결 구도에 입각해 언론을 접하는 이들은 네 편 내 편 감성을 눈덩이 굴리듯 불린다. 내 편 키워드가 아닌 다른 편 키워드를 모집단으로 하는 이를 발견할 시 논쟁을 시작한다.
2-3 논쟁은 소모적으로 반복된다. 이 역시 두 가지 관점으로 갈리는데, 이게 온통 섞여들며 논쟁이 지속되니 결판이 날 도리가 없다. 첫째는 폭력적 잘잘못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집회의 자체의 타당성에 관한 것이다. 먼저는 "폭력 집회에 폭력 진압으로 대응했다. 폭력 진압도 옳다." 와 "비폭력 집회였으나 폭력 진압에 도발되어 폭력집회가 된 것이다. 그러니 폭력 진압은 그르다." 이고, 다음은, "집회는 과연 논리적이고도 순수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가. (무조건 반정부, 감성치중) 불순하고도 우습다. 경찰은 세월호 집회에 의한 피해자다." 와, "사건 발생과 구조 파행에 대한 진상 규명을 원하며 집회와 결사는 국가에 그를 표현하는 국민의 방법이다. 그러니 옳다."이다.
2-4 그녀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폭력과 집회에 대응할 만큼 강력한 키워드가 등장할 수 없다. 물대포 뿌리고 최루액 뿌리고 벽처럼 서 있는 버스에 올라타고 넘어뜨리고 창문을 부수고 사람을 연행하고 와중에 쓰러지고 부상자가 나오는 이 집회보다 주목을 받을 키워드가, 세월호 국면에서,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국가가 새로운 키워드를 던지지 않는 이상 이 국면은 나아갈 수가 없다. 논쟁은 이곳에 머무른다.
2-5 국면을 바꾸는 강력한 키워드의 부재는 소모전을 보장하고 나아가 더 많이 무리가 모이는 것을 분명히 막는다. 폭력과 집회의 타당성을 따지는 소모전 앞에서 중립자들은, 진상규명을 외치는 목소리를 외면할망정 동참하지는 않는다. 일반 시민이 정치에 냉소주의가 되는 과정이 그렇다. 정치야 뭐 늘 개싸움이고 답이 없지 뭐. 알아서 뭐해 몰라도 살어. 이게 그 알고리즘이다.
3-1 일 년이 가도록 꼼짝을 안 하는 정부를 움직이기 위해서 필요한 건 더 큰 시민의 목소리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직 생각을 정하지 않은 사람들의 관심을 잃는 것은 진실을 요구하는 입장, 굳이 밝히고 싶지 않은 입장 모두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3-2 항의하는 목소리가 작아지면 국가는 더욱 시간을 끌며, 목소리가 사라지기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때는 원하는 바를 조용히 관철할 수 있다. 하하. 얼굴을 감추기만 하면 알아서 지치는 목소리라니 얼마나 다루기 쉬운가.
3-3 소모전의 길이는 그녀의 귀국 시기에 달렸다. 입국하자마자 뉴스의 줄기는 당연하게 바뀐다. 오직 하나, 그녀의 반응과 그녀의 선택이다. 이후 또다시 물어뜯는 싸움이 계속되겠지만, 매일매일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될 한 사람이 있고 무슨 결정이든 고민이든 행보든 보일 테니, 그것은 키워드가 되어 새로운 논쟁을 일으킬 테다. 주제가 한자리에 고여 죽어가지 않고 역동적으로 움직일 때 새로운 호기심들은 피어날 가능성이 높다.
4-1 그러니까 내 말은, 출국이 정말 영리한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싶다는 것이다. 하하. 자기를 위한 최고의 선택이었다. 지치고 질리게 하기, 아주 좋은 방법을 선택했다. 그것도 가장 격한 목소리가 올라오고 이런 폭력적 가능성을 충분히 염두에 둘 수 있을 때. 내가 그녀의 자리에 그녀로서 있어도 출국이라는 패를 선택했을 것이다.
4-2 그런데. 그런데 진짜, 정말로 국가를 생각하는 대통령이라면. 국민 삼백 명이 한꺼번에 죽은 날을 추모하는 의미 이외에, 국가적 갈등을 리드하기 위해 국내에 머물러야만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진짜 리더라면 슬픔을 공감하는 것, 그래 그것도 물론 중요한 일이고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리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성만으로 생각을 해보아도. 리더라면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여기 덩그러니 있다. 그런데 출국이라니. 국민 여론끼리 싸우다 지쳐버릴 가능성이 가장 큰 딱 좋은 타이밍에 출국이라니.
4-3 또한 정말로 국가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라는 게 있는 대통령이라면, 자신이 출국할 경우 대통령 직무 대행을 해야 하는 총리가 논란에 휩싸여 있을 때, 그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어디를 떠날 생각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당 내에서도 퇴진이 거론되고 있는 사람에게 나라를 맡기고 해외 순방을 가는 건 정말 비상식적인 결정이었다.
5-1 잘난 대통령 아래 고생이 많다. 출국도 치밀하게 전략적으로 하신다. 아아 한국이여. 외교가 오직 외교만이 될 수는 없는 한국이여.
5-2 더욱 절망인 것은, 그녀의 무능함이 아니라 그 무능을 수습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영웅적 해결사를 기대하기엔 지금은 정말 아무도 없다. 그냥 국민 하나하나가 나서서 해결하는 수 밖에 없다. 모두가 하루하루를 모아 만들어온 나라다. 너무 많이 엉켰고, 답답해서 외면하고 싶지만, 답답에는 외면이 아니라 직면이 길이다. 하나하나 풀어가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답답하다가 숨이 막혀 죽을까 한다. 여태 만들어온 것도 겨우 이 나라지만, 내일도 우리는 이 나라를 만들 기회가 있다. 닥친 기회를 잡자. 할 수 있다. 해야 한다. 대통령이 이러니, 주권자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는 없다. 한 명 한 명이 모두가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