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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 아름다운 나이
실은 이런 길쯤이야 오백번도 더 혼자 걸을 수 있다. 4년이나 그와 같은 길을, 새벽에 아주 깊은 밤에, 정말로 사람이 아무도 없거나 진짜로 술취한 무뢰배가 휘청이던 그 길도 나는 아주 잘 걸어다녔다. 안전 불감증 같은 게 아니라, 사실은 정말 괜찮다는 이야기다. 충분히 뛸 수 있는 거리고 술취한 놈은 내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지! 혹시 정말 미친놈이 나를 노리더라도 내가 그런 놈에 대해 감지할 수 없을 만큼 겁 없는 애는 아니다. 경계하고 조심하면 그래 그런 길 따위는 골백번도 어찌 혼자 걷지 못하랴.
다만. 내가 그 곳에 남아서 굳이 책을 읽은 것은, 경제를 공부하는 세 남자가 참 좋았다. 나는 오빠들이 좋고 그저 보는 것도 좋고. 수학을 넘어서 경제를(!) 배우고 연구하고 가르치고 상의하고 그런 모습을 내 눈으로 봐서, 내 앞에서 그래서 집에 가지 않았다. 험한 귀갓길 데려다 주겠거니 기다린 것도 아니고 그걸 노린 건 더더욱 아니다. 난 그저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수학하는 남자가 좋았고, 그게 내가 모르는 거라서 더더욱 좋아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C는 때때로 나에게 장난을 걸어 주었다. 다정하게 이야기 해줬다. 또 내가 좋아하는 B는 나를 아끼는 진짜 여동생처럼 잘 챙겨줬다. 이거 먹어, 이렇게 먹어 저렇게 먹어. 글씨를 못쓰네, 이제 겨우 그거 공부했어? 하며 또 우리가 공유하는 우스갯 소리를 끌어오고. 그리고 내가 정말로 진짜 좋아하는 A는 밤중에도 와서는 사람들을 돕고 또. 기타를 쳤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 그리고 또 우리끼리만 잘 통하는 얘기 열심히 하고. 들어주고 듣고. 하, 이렇게 좋을 수가.
공부를 모두 마친 새벽에 다들 나를 데려다 줬다. 나를 가운데 두고 둘러 싸고 그런 것까지야 아니더라도, 그저 쌀쌀한 늦여름 밤에 너무 밝은 반달 아래서. 나를 위해 이십분 정도 걸어줬다, 모두. 나 위험하니까. 하… 숨기지 않겠다. 좋은걸 어쩌랴. 감격에 감격이라 샤워도 전에 세수도 전에 나는 지금 자판부터 두드려 이 감동 생생히 남기려 하고 있다. 하. 좋다.
어떤 이성적 케미스트리의 발생과 그에 대한 미래적 기대가 주는 희열이라고 말 할수는 없다. 그냥. 보호받는다는 게 정말 기쁘다. 내가 좋아하고 의지하고 인정하는 남자가 세명이나, 그들과 나의 아름다운 나이에 서로의 일상을 마땅히 공유했다. 우리 집으로 가는 무거운 길 위에서 내가 위험하지 않도록, 사실 물리적 위협보다 내게는 더 실제적이었던 외로움이라는 공허함이 나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바래다주었다. 아름다운 나이, 아름다운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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