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Have been

오랜만에 진짜 일기

善化 2013. 12. 28. 03:27






누군가
 훗날에 나의 오늘날이 어떠했는가 묻는다면, 

아주 아주 한심하고 어리석은 날들 속에 욕심마저 나를  잃게 하였다고  하리라. 

더이상 무거운 어께를 위로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 내가 저질러온 사고의 책임 만이 매일 나와 함께였다고. 

위로받을 필요도 자격도 없이,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나는 부족함  자체로, 나뿐 아니라 나를 두른 모든 것에 

어두운 안개를 드리우던 존재였음을 설명할 것이다





선호야. 변명도 못할 명백한 너의 잘못 앞에, 누구의 위로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어떻게 생각해도 스스로도 너를 용납하고 싶지 않을 만큼 미울 때. 거울 속 수치가 네 마음을 깊이 찌를 때에도. 괜찮아. 로마를 통일하고 영국 정복하던 시저도 결점이 있었다더라. 고결한 대의 명분으로 모두가 존경하던 브루터스도 어리석게 속기도 하더라.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면서 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킨다고 했지만, 그는 어느 하나도 얻지 못했다. 



책임이 너무 무겁고, 중경을 떠나서 그걸 져야만 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를 힘들게 하겠지만. 그 시간동안 잠잠히 견딜 수 있기를. 그럴 수도 있다, 사람이. 나는 너와같이 절망스러웠던 시절에, 그 시절을 통해 이런 너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했다. 이렇게 절망했구나. 이렇게 슬퍼했겠구나, 우리 오빠가. 절망에의 경험은 단지 너를 더 이해할 수 있게 했기 때문에, 이제 너에게 하는 나의 괜찮다는 위로가 진정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음으로. 가치가 있다. 그래서 나는 아주 조금,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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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와니 오빠에게. 오늘의 쓸쓸한 날에도 나는 나처럼 혼자 있던 당신과 함께였습니다. 당신처럼 영화를 혼자 보았고, 당신처럼 국물 있는 음식을 혼자 먹었고, 당신처럼 sns에도 올리고. 그리고 또 당신처럼 옛 사랑을 실컷 불렀어요. 재수 없게, 나는 남자한테 또 퇴짜맞고 혼자 영화를 보러 온건데, 양 옆에 커플이 앉아서 더 화가 났는데. 아. 오빠는 정말 오랜 시간동안 이렇게 살았겠구나. 싶어서. 오빠는 맨날 이러는데 뭐.. 하는 마음으로, 나는 금새 괜찮아졌어요. 잔인한 고문 장면이 불쑥불쑥 스크린을 스칠 때면, 혼자 보러 오는 게 아닌데, 싶었지만. 결국 다 봤어요.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잠잠하게 혼자서, 박수도 쳤습니다. 



버스 타려고 보니까 바보같이 카드가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영화관에 떨어뜨렸던 것 같아요, 영수증이랑. 왜냐면 영수증이 떨어진 건 분명히 봤는데 카드가 주머니에 없어요. 진짜 멍청이. 내려오는 것도 진짜 돌아돌아 힘들게 내려왔는데, 또 멍청하게, 뭘 두고 나왔습니다. 다시 허겁지겁 올라갔죠. 술 잘 안먹는 나도 변호인을 보니 술이 땡겼는데, 누가 주워 오늘 밤 술값이라도 긁으면 어쩌나 싶어서. 에스컬레이터도 다 멈추고 겨우 계단을 뛰어 올라가 영화관엘 갔는데, 주운 것도 없다고 하고, 다시 내 자리를 돌아가 사람들 사이에 후레쉬를 비추며 찾아봐도 보이질 않고. 울컥 화가 났어요. 진짜 병신이라. 직원이 분실 신고를 해준다고 해서… 다시 카드지갑을 보니까, 있네. 병신. 또 생쇼 했습니다. 저는 가끔 이래요. 아까 영화관 갈때도, 맨날 가던 길인데 버스 잘못타서 내리고 그것도 잘못 내려서 한참 걷고, 영화 늦고. 난리쳤거든요. 정신 팔고 있다가. 이럴 때 정말 누가 옆에 있어주면 좋겠다 싶은데. 없네. 



그래도 집에 잘 왔습니다. 당신 한 것처럼 국물있는 음식, 국수도 먹고. 아주머니가 날 알아봐 주셔서, 썰을 풀 거리가 생긴 것에 내심 포만감을 느꼈어요. 그런데 문을 나서니까, 오늘 퇴짜놓은 그남자랑 자주 걷던 길이 보이더라구요. 너와 자주 걷던 그 집에 가는 길, 하고 마음 속에 노래가 울리더군요. 날이 쌀쌀해지고 나서는 바래다 준다는 걸 자주 거절했는데. 끝날 때 이렇게 아쉬울 줄 알았으면 싫다고 할 때도 데려다 달라고 우기는 건데. 



학교로 들어오자 마자 당신이 불러주었던 옛사랑을 크게 불렀습니다. 가사가, 오늘만큼, 내 마음인 적이 없어요. 먼저 이 노래를 불러줘서 고마워요. 그 때 당신의 마음으로 나도,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어보았습니다. 없을 줄 알지만, 이 방 불 빛도 못 볼 줄 알지만. 레몬차 가지러 간다는 핑계로 또 동아리 방에 가서. 노래나 실컷 불렀지요. 아무도 없어서. 정말로 크게, 간절하게. 누가 물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지나간 내 모습, 모두 거짓이야.